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Nikolaus Harnoncourt) 지휘자 Conductor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Nikolaus Harnoncourt, 1929년~2016년) Conductor 지휘자

1929년 12월 6일 출생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는 귀족 집안 출신으로, 아버지는 포르투칼계 룩셈부르크의 로트링백작 가문의 후손으로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공작이었고 어머니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일원으로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황실이였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에 그라츠의 음악선생인 한스 코르트샥으로부터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형은 필리프와 함꼐 그라치의 돔성당에서 복사를 해 가면서 교회음악의 기초를 쌓는 동시에 정기적으로 가족 음악연주회를 열면서 음악 활동을 시작 했다.

1944년 그라츠가 연합군에 의해 폭격으로 화마에 휩싸이고 있을때, 가족은 친적들이 살고 있는 잘츠캄머굿의 그룬트제로 이사를 가게된다.거기서 부쉬 현악 4중주단의 일원이자 뛰어난 첼로 교육자였던 파울귐머를 만나게돼 첼로를 배우게 된다. 1947년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한 베토벤 교향곡 7번을 듣고 음악가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게 되는다. 그리하여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첼로주자 엠마누엘 브라벡에게 사사를 하게 된다. 

1952년 음악원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빈 심포니오케스트라를 지휘하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에게 발탁되어 1969년까지 첼로 주자로 활동한다. 이시기에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카라얀을 비롯해 정상급 오케스트라 지휘자들의 음악을 경혐하게된다.

1953년 바이올린으로 디플롬을 취득한 알리스호펠너와 결혼하였으나 이들 부부는 비엔나 심포니에서 세 동료들과 함께 고음악 연주실습을 체계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음악 단체를 설립하게된다. 특히 특별한 앙상블의 구성에 있어 중요한 것은 연주에 맞는 원전 악이 었다.

그는 일찍이 1950년대에 역사적 악기들을 수집하기 시작했었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악기를 얻기 위해 재정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정확한 정보, 감각을 필요했으며 때로는 교묘한 수단을 써야만 했따. 

이 단체는 차츰 고음악 연주에 필요한 악기들을 소유하게 되었으며, 15세기 18세기까지의 중요한 작품들을 점차로 습득해 갔다.

그는 이단체에서 비올라 다 감바를 직접 연주 하였는데 1954년 빈의 콘체르트 하우스에서 파울 힌데미트의 지휘로 비공식 데뷔 무대를 가졌으며, 20세기 몬테베르디 오페라 레퍼토리를 재발견하면서 연주를 통해 지휘자로 전환하게 되었다.

1980년부터 1989년까지 모차르트의 오페라들 루치오실라, 폰토의 왕 미트라다테, 돈조반지 등을 올려 공연을 통해 정규적인 취리히 오케스트라로 부터 원전악기 연주법을 습득시키기도 하였다.

1970년대부터 그는 지휘자로써 유명 오페라하우스에서 오케스트라를 이끌기 시작한다.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를 시작으로 전통적인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빈 심포니와 빈 필하모닉, 유럽챔버 오케스트라, 베를린 필하모닉,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하였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그는 편안한 지휘자가 아니였다. 알려진 오류를 수정하고 본인의 해석이 표기된 자기의 악보 자료를 나우어 주며 자신이 작업한 세부적인 부분을 집중하게된다. 그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연습을 적게 하거나 거의 시키지 않기도 했다. 자신의 예술적 발전과 자유가 제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 자리를 맡지 않았다.

아르농쿠르 와 그의 작품들은 많은 상을 수상했는데 1980년 '에라스무스상' 1985년 고음악에 기여로 독일 음반 비평가회가 수여한 '황금명예 바늘상' 1994년 스웨덴 왕궁 합창연주로 받은 '그래미상' 2002년 에른스트 '폰지멘서 음악상' 등 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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