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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린 마젤 (Lorin Maazel 1930~2014) Conductor 지휘자

1930년 3월 6일 출생

로린 마젤은 프랑스의 파리 근교의 뉘이에서 태어났다. 유대계 러시아인인 부친과 헝가리와 러시아의 혼혈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이 일가는 미국으로 이주했기 때문에 어린 로린은 피츠버그에서 자랐다. 일찍부터 음악적인 재능을 발휘하여 4세 때 절대음감과 발군의 기억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는데, 로린은 지휘에 비상한 흥미를 보였다고 한다.


8세 때 이미 아이다호의 대학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여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연주하였다. 그 당시 대평론가인 오린 다운즈에게 인정되어, 1939년 9세 때 뉴욕 세계 박람회에 출연하여 대편성 오케스트라를 지휘함으로서 신동 지휘자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였다. 또 10세인가 11세 때 NBC 교향악단을 객원 지휘하였고, 이어서 뉴욕 필하모닉을 지휘하였다.


그러나 마젤은 그대로 학업을 계속하여, 고등학교를 16세 때 졸업한 다음 피츠 버그 대학에 들어가 어학과 철학을 전공하였다. 그 한편 블라디미르 바칼레이니코프에게 바이올린과 지휘법을 배웠다. 이 동안 피츠버그 교향악단의 바이올린 주자를 맡았고, 아트 현악 4중주단을 조직하여 활약하였는데, 1949년에는 피츠버그 교향악단의 부지휘자로 임명되었다. 1951년에 풀브라이트 국비생(장학생)으로서 이탈리아로 유학하여 바흐를 비롯한 바로크 음악을 주로 공부하였으며, 보스턴의 버크셔 음악 센터에서는 지휘법을 공부했다.


1953년에는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본격적인 데뷔를 장식하여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성공하였다. 그 이래 세계에서 가장 젊은 지휘자로서 유럽 각국의 주요 오케스트라와 음악제에 게스트로 초청되어 대활약을 시작하였다. 더구나 1960년 30세의 나이로 바이로이트의 바그너 음악제에 [로엔그린]를 가지고 등장하여 실력과 경력을 인정받았다. 마젤은 그 후에도 1968년과 1969년에 바이로이트에 초청되어 [니벨룽겐의 가락지] 전4부작을 지휘하였다.

1965년 베를린 도이치 오페라의 음악 총감독에 취임하였으며 동시에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의 수석 지휘자도 겸임하여, 서 베를린의 인기를 카라얀과 양분하게 되었다. 오페라 활동은 1971년까지 했고, 방송교향악단은 1973년까지 지휘하였다.

1970년부터 1972년까지 런던의 뉴 필하모니아 관현악단에서 클렘페러를 보좌하는 준지휘자를 맡았는데, 1972년에는 미국으로 본거지를 옮기고 클리블랜드 관현악단의 음악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1976년부터는 프랑스 국립관현악단의 상임 객원 지휘자도 겸임했으며, 1982년 시즌부터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총감독으로 취임했다.

레코드는 베를린 필하모니를 지휘한 것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멘델스존의 교향곡 [이탈리아]와 [종교 개혁], 라벨의 [어린이와 마법](이상 그라모폰)등이 유명하다.

30세 전 마젤의 젊은 무사로서의 활약이 충분히 발휘된 그것은 자기 주장의 강한 매력이 넘치는 연주였다. 베를린 도이치 오페라 시대의 레코드에서는 소프라노인 안나 모포를 주역으로 한 비제의 [카르멘] 전곡(오이로디스크)이 인상에 남는다. 이것은 알코어판의 원전을 철저하게 해석한 것으로, 이 오페라의 강한 생명력을 재발전시켰다.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시대는 필립스에서 바흐를 비롯해서 바로크음악을 상당히 중점적으로 녹음하여 [b단조 미사곡]등에서는 마젤다운 자기 주장을 보였는데, 오히려 페르골레시의 [스타바트 마테르]가 마음에 남는다.

클리블랜드 재임 후는 초기에 거슈윈의 [포기와 베스]전곡, 프로코피예프의 [로메오와 줄리에트](이상 런던)에서 공전의 명연을 들려주었다. 그러나 대작의 브람스, 베토벤 두 교향곡 전집(런던, CBS) 등은 지나치게 정통적인 표현으로써 마젤다운 개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약간 유감이다. 최근의 것에는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CBS)이 오랜만에 정교한 표현을 통해 그다움을 다시 되찾은 것만 같다.

1988년 가을부터 피츠버그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마젤은 그동안의 음악적인 성숙으로 생의 깊이를 밀도있게 음악으로써 그릴 것이다.


1978년 9월 13일에 열린 클리블랜드 관현악단의 연주는 청중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이 관현악단이 몇 해 전에 왔을 때엔 조지 셀이 엄격한 지휘로써 빈틈없는 다부진 연주를 들려 주었지만, 이번엔 40대의 천재 지휘자 로린 마젤이 신비적이면서도 감동적인 연주를 들려주었다.

마젤은 지휘를 매우 부드럽게 하면서도 강인한 표현을 하는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었다. 마지막 곡인 차이콥스키의 [비창 교향곡]제4악장 중간 부분에서 너무나도 열띤 지휘를 하느라고 두 팔을 휘두르다가 지휘봉이 왼손과 부딪쳐서 그만 두 동강이가 나서 3분의 2길이의 끝부분은 무대 위에 떨어졌다.

그는 부러진 그 짧은 지휘봉을 휘두르면서 바로 앞의 비올리스트에게 지휘봉이 부러졌다는 것을 알리자 이 비올리스트는 준비하고 있던 새 지휘봉을 꺼내서 손을 뻗쳐 조용히 내밀자, 마젤은 약간 허리를 구부리는가 하더니 날쌔게 받아서 그대로 지휘를 계속했다. 지휘봉이 부러지는 것도 극적이지만, 부러진 손잡이 부분을 내려뜨리지 않고 오른손으로 살그머니 모우닝 코트의 안호주머니에 넣어 두는 것은 아름다운 정경이었다.


신경질이 심했던 토스카니니는 리허설 때 자기 뜻대로 안되면 지휘봉을 꺾어버리는 것이 일쑤였다고 한다. 따라서 금방 화가 가라앉으라고 일부러 꺾어지기 쉬운 나무로 특별히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로린 마젤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지휘봉을 자기의 목숨처럼 생각하는 듯이 애지중지한다. 제2회 대한민국 음악제 때 출연했던 유고슬라비아의 지휘자도 지휘에 너무 열중하다가 지휘봉을 부러뜨린 일이 있지만, 지금 세계 최고의 지휘자의 한 사람으로 활동하는 신비적인 지휘자 로린 마젤이 지휘 중에 지휘봉을 부러뜨렸다는 것은 길이 남을 에피소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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