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여행] 본 슈만 하우스 관람 후기

슈만 하우스 

Schumann Haus

Sebastianstraße 182, 53115 Bonn 


독일 본에 있는 슈만 하우스에 가봤습니다.

잘 안 알려져 있어서 이런데가 있는지도 몰랐는데요, 

슈만이 왜 본에 살았어?라며 저도 의아했었거든요

슈만은 본래 독일 동쪽 국경근처의 츠비카우 출신으로 라이프치히와 드레스덴에서 음악활동을 해오다가 뒤셀도르프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및 지휘자로 부임하게 되어 서쪽으로 이주해옵니다. 

슈만 가족은 뒤셀도르프에서 가까운 본으로 휴가때나 주말에 자주 왔다고합니다. 

슈만은 현재도 남아있는 본의 뮌스터광장에 베토벤 동상을 모금을 위해 열성적으로 기부금 모집 활동을 했고 

동상이 세워진 이후에 젊은 브람스와 함께 동상 제막식에도 참가했습니다. 

이 건물은 정신과 의사 리차즈 박사의 요양소의 일부분이었는데, 슈만은 1854년 3월 환자로써 이곳에 와서 임종을 맞았습니다.

1926년 의학자문위원이었던 켈러 박사가 슈만이 임종한 이 건물에 슈만 기념관을 설립할 것을 제안, 그의 고향인 츠비카우시의 슈만 협회가 기증한 기념패를 달았습니다.

2차대전 중에 건물이 상당히 훼손되어서 1956년 철거될뻔 했으나 복원공사를 거쳐1965년 공개되었고, 현재는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슈만의 일생과 작품활동과 연관있는 편지, 악보, 초상화, 사진, 그랜드 피아노 등의 기념품이 전시되어 있는 한편, 시민들에게 음악관련 서적, 미디어를 대여하는 도서관 및 연주회 정보를 제공하는 곳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왼쪽에 도서관이 있구요, 

이층으로 올라가면 뮤지움 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입장료는 무료

여러가지 연주회나 관련 정보들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입구에 있는 큰 라운지 같은 공간은 현재도 음악 교육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사용하고 있고, 양쪽서가에 대여 가능한 책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주로 음악교육, 슈만의 생애와 음악에 대해 연구한 서적, 어린이용 책 등입니다.

슈만의 작업실로 사용했던 방을 뮤지움으로 꾸며놨네요.

1810년 츠비카우에서 태어난 슈만은 라이프치히 법대에 진학했으나 하라는 법 공부는 안하고 프리드리히 비크의 문하에서 피아노를 배웁니다. 

이때 브람스는 열정이 과해서 그만 넷째 손가락이 부러져서 피아니스트의 길을 포기하고 작곡과 음악평론가로써 살게됩니다. 

클라라는 브람스의 스승인 비크가 아내도 없이 애지중지 키우던 딸이었는데요,

이미 9세에  전 유럽에 신동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알렸고 클라라가 14살이 되던해에 23세의 슈만과 사랑에 빠져서 결혼하려고했으나 클라라의 아버지인 비크의 반대로 결국 슈만과 비크는 법정다툼까지 가게됩니다...

(슈만 가족의 가계도)

당시 세상에도 알려질 정도의 추한 법정 다툼끝에 결국 법원은 슈만의 손을 들어줬고 둘은 결혼, 6명의 자녀를 두고 다복하게 잘 살았다고 합니다. 

슈만은 클라라의 지극한 내조와 사랑을 받은 덕분인지 그의 음악 특히 가곡에서 행복한 느낌을 주는데요, 특히 결혼한 이 해는 슈만생애의 걸작인 가곡들이 많이 탄생했습니다.

대체로 불쌍한 ㅠㅠ 생애를 보냈던 가곡의왕 슈베르트에 비해서 슈만은 결혼후 안정을 찾고 음악에 몰두할수 있었던 가장 큰이유가 클라라 덕분이라는데에 이견이 없습니다. 

한때 독일 마르크 지폐에 새겨진 인물이었던 클라라는 당대 유명 피아니스트였고, 결혼 이후에도 계속 음악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결혼 이후 슈만은 현재도 발행되고 가장 유력한 음악평론지의 편집장으로 부임, 평론가로써 활동하는 한편, 교향곡, 실내악, 오라토리오 등도 왕성하게 작곡했고 라이프치히에서 드레스덴으로 이주, 피아노 협주곡 작곡에 매진하였으나 이때부터 정신이상 증세가 나타납니다.

1850년에 뒤셀도르프 오케스트라와 합창대의 지휘자 겸 음악감독으로 초빙되어서 서쪽으로 이주한 슈만은 내성적인 성격 탓에 단원들과 마찰을 일으켜서 지휘자직을 사임합니다. 

이 시기에 슈만은 당대 최고 바이올리니스트인 요제프 요아힘의 소개로 브람스를 만나게되고, 브람스의 재능에 감탄한 슈만은 그의 마지막 평론인 "새로운 길"을 통해서 브람스의 시대가 열렸다며 극찬합니다.

하지만 브람스를 알게된지 반년만에 우울증과 스트레스 등의 정신질환이 폭발하여 라인강에 투신했지만 다행히 지나가는 배가 구조해서 이후부터는 투병생활을 이어갑니다.

병상에서도 슈만은 작곡을 하고 사람들에게 편지도 보냈으나 모두 나중에 클라라가 없애버렸다고 합니다. 

결국 1856년 7월 29일 사망하기 직전, 클라라가 와인을 손가락에 찍어 슈만에게 먹여주려고 하자 슈만은 ''Ich weiß'' (나는 알고있다)라고 클라라를 붙잡고 말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클라라를 열렬히 사모한 브람스의 마음을 알고있다는 건지, 죽음을 알고있다는 건지...슈만만 알고 있겠죠.

슈만은 결국 본 시립묘지에 안장되었고 아내인 클라라는 남은 여생을 브람스의 구애에도 불구하고 홀로 아이들을 키우며 피아노 연주와 슈만의 음악을 알리며 살다가 남편 옆에 묻혔습니다.

(로베르트 슈만의 머리카락)

(클라라의 어린시절. 결혼전이라 이름은 클라라 비크로 소개됨)

(안쪽에 위치한 방. 여기는 주로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과 브람스 관련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음)

(슈만이 사용했던 피아노)

(브람스 청년시절 사진. 이때쯤 슈만을 만난것으로 추정)

(브람스의 장년..)

브람스는 슈만이 죽은 이후에도 독신으로 지내며 클라라와 그 자녀들을 돌보다가 클라라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죽음과 관련된 곡을 작곡...

클라라의 사망이후 급격이 건강이 악화되어서 그녀의 사후 1년만에 사망합니다. 

한편 슈만은 이전까지는 단순한 정신이상등의 이유로 사망한것으로 알려졌으나 1994년에 슈만의 정신병원 진료기록이 공개되었고, 사인은 매독이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슈만 사후 부검 감정서에서도 매독의 특징적인 증상이 나타났다고 하는데, 이때문에 병상에서 지인에게 보낸 편지들을 클라라가 남편의 명예를 위해 모두 없애버렸던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습니다.

클라라의 지극한 내조와 사랑을 받으며 병상에 있던 슈만을 위해 여섯 자녀의 사진도 찍어서 보내준 슈만 가족. 

많은 음악가들이 대게 불운한 가정사나 결혼생활을 겪은데 비해 슈만은 생애동안 행복했을것 같습니다. 

슈만 하우스 

Schumann Haus

주소 : Sebastianstraße 182, 53115 B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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