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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가니니 Paganini, Niccolo (1782-1840) 작곡가

제노바 출생. 어려서 제노바의 오페라극장 지휘자 세르베토와 산로렌초성당의 악장 G.코스타 등에게 사사하고 9세 때 첫 바이올린 연주회를 개최하였다. 13세 때 다시 A.롤라에게 바이올린을, 기레티에게 작곡을 배우면서 그는 그 무렵부터 연주여행과 초인적인 기교를 발휘하기 위한 난곡(難曲)을 작곡하기 시작하였다. 1799년 루카에서 연주회를 열어 대성공을 거둔 후 북부 이탈리아 각지를 돌며 화려한 연주생활에 들어갔으나 1801∼1804년 어느 귀부인과의 동거생활로 연주활동에서 떠나 어렸을 때 배운 기타에 열중하였다가 1805년 연주활동을 재개, 루카에서 대성공을 거두고 그 곳 궁정오페라극장의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1813년에는 밀라노에서 한 시즌에 36회나 연주회를 열고, 1815년에는 베네치아로 옮겨 그 곳의 여가수 안토니아 비안키를 만나 두 사람 사이에 남자 아이가 태어났으나 그들은 2년 후에 헤어졌다. 

이 무렵부터 건강이 나빠졌으나 그의 명예욕과 활동력은 건강과는 반비례적으로 불타올라, 1823년에는 빈을 방문하여 이른바 파가니니선풍을 일으켰다. 이 선풍은 다시 프라하 ·드레스덴 ·베를린을 휩쓸고 1831년에는 파리, 이어서 런던을 비롯한 영국 각지에까지 미쳤다. 이 여행에서 파가니니는 거만의 부(富)와 연주사상 공전의 명성을 얻은 후 1832년 제노바로 돌아왔다. 그러나 1833년 파리에 갔다가 이듬해 귀국한 후부터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어 마침내 인후암(咽喉癌)으로 죽었다. 그는 자기의 연주법을 비밀에 붙이고 제자도 단 한 사람 시보리뿐이었으며, 많은 명바이올린 연주자들처럼 유파(流派)를 형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주법은 현재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전해지지 못하고 있다.

그의 음량은 그다지 풍부하지 않았지만 음색은 매우 아름다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4옥타브에 걸치는 넓은 음역, 각종의 중음(重音), 플라지올레토, 스타카토, 스피카토, 살타토 등의 기교를 극도로 구사하여 화려한 곡예적인 연주법를 창조하였다. 그것은 당시 급격히 무르익어 가고 있던 낭만파음악의 일대 특징인 명인적(名人的)인 연주의 선구를 이루는 것으로, 그의 주법은 직접 후세에 전달되지는 못했으나 낭만파음악에 준 영향은 매우 크다. 작품은 바이올린곡뿐이며, 모두가 어려운 기교를 곁들인 것으로 형식적인 면보다 즉흥적인 화려함에 특색이 있다. 대표작에 협주곡 2곡(미출판분은 제외), 카프리치오 24곡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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