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Fryderyk Franciszek Chopin) 작곡가

쇼팽 (Fryderyk Franciszek Chopin, 1810~1849) 작곡가

1810년 3월 1일 출생

쇼팽은 평생 피아노 곡만 썼다고 해도 좋을 만큼 그분야에서 최고라고 하수도 있다.  교향곡은 베토벤, 실내악곡은 하이든, 가곡은 슈베르트 처럼 피아노에서는 쇼팽임이 분명하다. 그의 음악을 들을때 가을의 달빛을 느끼고 거것을 창백한 은빛이 교교하게 만물을 비추듯 아름다움 그자체이기 때문이다. 그의 음악에 몸을 맡기는 모든 사람들은 달빛에 정화되고 고요하게 빛나는 마음 속에서 꿈꾸는 듯한 기분이 된다. 그러나 그 환상적인 시인 쇼팽도 한편으로는 고국 폴란드를 생각할 떄 열렬한 애국의 정으로 건반을 피로 물들이는 정열의 시인이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는 프랑스어 교사이고 어머니는 폴란드의 천재적인 피아니스트 였다.  6살때 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여 8살에 이미 신동으로 명성을 얻었다. 12살 무렵 바르샤바 음악원에 원장에게 이론과 작곡을 배웠고, 아달베르트 지부니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이후 쇼팽은 누구에게도 정식 피아노 레슨을 받지 않고 작곡에 전념 했고 1824년 부터 음악에 몰두하여 최초의 작품 '론도' 를 출판했다. 1828년 아버지의 친구와 함께 베를린으로 갔는데 거기서 받은 자극으로 귀국 후 음악 활동을 활발히 하였다.

20살에 오스트리아 빈에 갔는데 그곳에서 모국의 슬픈 소식을 받아 들었다. 함께 간 친구들이 모국의 위급에 앞을 다투어 귀국할때 귀국하여 군대에 입대할 수 없었다. 그는 피아노에 의지해 애국의 열정을 담아 작곡에 전념할수 밖에 없었다. 

쇼패은 1839년에 조국의 휘기를 슬퍼하며, 바르샤바를 떠나 유럽으로 연주 여행에 올랐다. 이 여행으로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같은해 빈에서 연주했으나 저번 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1838년 파리에 도착했는데 이 해에 '혁명 연습곡'을 작곡 했다. 

1836년 자기 작품을 출판하면서 명성이 높아졌고 1835년 드레스덴에서 마리아 보첸스카와 약혼까지 했으나 결혼에 실패하였다.

1848년 부터 쇼팽의 병이 악화되면서 공개 연주 활동을 계속 할수 없게 되었다. 그해 연주회를 마지막으로 무대에서 은퇴하여 피아노를 가르치는 일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같은해 가을 건강이 회복되는 것을 계기로 스코틀랜드, 맨체스터, 글래스고, 에든버러, 런던등 연주회를 가지고 파리로 돌아왔으나 연주 여행으로 인한 피로가 병세를 악화시켜 이듬해 1849년 10월 17일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는 가운데 39세의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게 됬다. 쇼팽은 폴란드인과 프랑스인의 혼혈아였는데, 그 때문에 폴로네즈나 마주르카는 물론 다른 작품에 있어서도 폴란드의 민족 음악의 특질을 볼수 있다. 

그는 대부분 피아노곡만 쓴 음악사상 특이한 작곡가이며, 그의 주요 작품은 피아노 협주곡 2곡, 피아노 소나타 '장송' 외 2곡, 24의 전주곡, 연습곡, 녹턴, 즉흥곡, 발라드, 등 다수의 곡들을 작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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